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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실화를 모티브로 삼아 영화로 만들었을 때 가장 염려스러운 부분은 영화배우가 실제 인물을 얼마만큼 연기해내느냐 하는 것이다. 특히 유명 정치인의 경우 매일 뉴스를 통해 접했던 만큼 웬만큼 닮은꼴을 하지 않고서는 관객이 몰입하기 힘들다. 더군다나 그 인물이 격동의 현대사를 겪어가는 과정에서 호불호가 너무나도 분명한 거물급이었다면 그 무게는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영화 ‘이웃사촌’은 모두가 허구라고 하지만, 가택연금을 당한 정치인을 우리는 바로 떠올릴 수 있었고, 그 시대가 얼마나 폭압적이고 반인권적인 암흑기였는지도 어렵지 않
영화속감사
김서정 기자
2021.03.04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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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영화의 시대 배경은 1995년이고, 공간은 대기업 사무직들이 근무하는 빌딩 안이다.우선 놀라는 것은 남자 직원들 책상에 재떨이가 있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담배연기를 내뿜는 것이었다. 다음으로 놀라는 것은 자주색 유니폼을 입은 고졸 여직원들이 커피를 타는 장면이었다. 봉지 커피가 없던 시절이라 그런지 커피잔에 커피, 프림, 설탕을 빠른 속도로 넣는 것이었는데, 이렇게 탄 커피는 대졸 출신의 직원들 책상으로 배달되었다.이들은 이외에도 담배꽁초가 수북한 재떨이를 비워주기고 했고, 닦은 구두를 주인의 자리에 놓아주기
영화속감사
김서정 기자
2021.02.04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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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에는 일정한 패턴이 없지만,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소설, 드라마, 영화는 패턴을 가지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기승전결이 될 수도 있고,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 될 수도 있고, 간단하게 시작-중간-끝이 될 수도 있다. 내용적으로는 위기에 처한 사람이 시련을 극복해 성공인의 대열이 될 수도 있고, 나약한 사람이 멘토를 만나 당대를 평정하는 영웅이 될 수도 있고, 곤경에 빠트린 악인에게 복수를 가해 공감을 얻는 인물이 될 수도 있다.이러한 틀에서 긴장과 이완을 적당한 구조로 엮어 때로는 스릴 있게 때로는 웃음 코드로 일정 시간
영화속감사
김서정 기자
2021.01.19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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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이 시작되었다. 이는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돌아 처음 자리로 다시 왔다는 것을 말한다. 이를 공전(公轉)이라고 하는데, 공전이 한 번 일어나려면 365일이 걸린다. 하루 기준은 지구가 스스로 돌면서 만들어내는 낮과 밤의 경계를 구획한 것이다. 이를 또 쪼개 24시간을 만들고, 또 쪼개 분과 초 개념까지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을 통틀어 시간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우주의 다른 곳은 몰라도 지구에서 벌어진 일은 분명하다.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고 있다. 타원을 그리며 지구가 돈다고 하더라도 현재에서 과거로 갈 수 없고 현재에서
영화속감사
김서정 기자
2020.12.31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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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현재의 기억으로부터 재편된다. 그때 그 시절이 어떤 때는 좋았다가 어떤 때는 진저리가 난다. 그 모습들이 물리적으로 남아 있지 않고 마음속에만 남아 있다 보니 벌어지는 현상이다. 지금 상태가 좋다고 해서 그 기억이 아름답지도 않고 지금 상태가 나쁘다고 해서 그 기억이 고달프지도 않다. 오로지 그 기억과 현재의 마음 상태가 1초에 90번 이상 날갯짓을 하는 벌새보다 더 많이 교감하면서 벌어질 뿐이다. 제주도 봄날 날씨보다 더 변화무쌍하고 변덕스럽다.아내가 내게 말했다.“영화에 방앗간이 나와.”느린 전개 탓에 독립영화는 거의 보
영화속감사
이춘선 기자
2020.11.02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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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일이다. 한양도성 백악구간 해설을 할 때였다. 백악산 청운대에 서서 남산 쪽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풍수지리적으로 백악산이 주산(主山)이고 저 앞에 있는 남산은 안산(案山)이라고 불립니다. 안산은 주산을 지켜준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선 시대에는 남산에 국사당을 지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조선 신궁이 들어섰고, 박정희 대통령 때에는 중앙정보부 즉 지금의 국정원이 자리를 잡았고, 민주화가 된 지금은 시민 공원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그러고는 그날따라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일요일 광화문 광장에서 하늘을 찌를 듯한
영화속감사
김서정 기자
2020.02.10 14: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