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관의 리더십

 

 

황진하 장군은 황희 정승의 22대 손으로 학문과 교육을 중시하는 가풍에서 자라났다. 황 장군의 아버지는 30년 동안 교편을 잡았다. 초등학교 교장이 마지막 직책이었다.

황 장군이 태어난 곳은 경기도 파주다. 그곳은 북한과 인접한 지역이라 몹시 어수선했다. 6.25전쟁이 종반으로 치닫던 1953년 초등학교에 들어갔는데, 대남방송이 얼마나 시끄러운지 수업을 제대로 못할 정도였다. 차림새와 행동거지가 조금만 수상하면 간첩으로 신고가 되던 시절이었다. 아이들은 간첩 잡는 군인들 뒤를 쫓아다니며 군인의 길을 꿈꾸었다.

황 장군은 중학교 때 아버지의 지시로 신문배달을 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버스정류장 근처에 있는 배달소에 가서 신문을 받아 자전거에 싣고는 5km 떨어진 미군부대에 배달했다. 신문배달을 통해 소년 황진하는 독립심과 극기심을 배웠다. 또 자연스럽게 영어의 기초를 다지게 됐다.

학창 시절 부친의 가르침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람을 칭찬해 줘라”는 것이었다. 황 장군은 이 가르침을 평생 잊지 않았다. 부친은 황 장군이 사관학교에 들어간 직후 다음의 얘기를 들려주며 칭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다음은 그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했다.

『당시 황 장군의 고향에는 어느 동네나 그렇듯 꽤나 불량한 청년이 하나 있었다. 말하자면 동네 깡패였다. 그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은 아이가 한 명도 없을 정도였다. 황 장군도 소년 시절 그에게 몇 대 맞은 적이 있다. 그런 그가 군에 입대하자 마을 사람들은 모두 좋아했다. 동네 말썽꾸러기가 자연스럽게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월남전에 참전한 그는 큰 공을 세웠고  훈장과 더불어 포상 휴가를 받았다. 그가 포상휴가를 받고 고향에 돌아오자 지역유지들이 환영대회를 열어주었다.

그렇지만 동네 사람들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그가 과거에 온갖 못된 짓을 하고 툭하면 파출소 드나들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라를 위해 공을 세웠다니 다들 과거의 나쁜 기억은 억누른 채 환영하고 칭찬을 해주었다.

자신의 과거 행적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대할까 내심 걱정했던 그는 사람들의 격려와 칭찬에 용기를 얻었다. 그는 신이 나서 자신의 공을 자랑하면서 “고향 어른들께서 잘 키워 주신 덕분입니다. 앞으로 남은 군 생활을 더 열심히 하고 성실하게 살겠습니다.”라고 동네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제대 후 고향에 돌아온 그는 실제로 마을 발전에 힘쓰며 모범적인 생활을 했다.』


황진하 장군에 대한 1감사
‘칭찬을 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평생 잊지않고 실천하는 효자라서 감동스럽습니다. 또한 이를 삶에 적용하여 칭찬과 격려를 통해 리더십을 발휘해 훌륭한 군인을 배출하는 지휘관이어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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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지지.격려가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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